인쇄물을 만들면서 “이 사이즈는 종이가 아깝게 나온다”거나 “규격에 맞추면 훨씬 싸다”는 말을 현장에서 자주 듣습니다. 처음에는 왜 특정 크기는 싸고 어떤 크기는 비싼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답은 종이가 처음부터 정해진 큰 원지, 즉 전지 단위로 만들어지고 팔린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A4나 명함은 이 큰 전지를 잘라서 나온 조각입니다. 전지에서 완성물이 몇 장 빠지느냐가 곧 종이값과 단가를 정합니다. 이 원리를 알면 설계 단계에서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종이는 전지 단위로 태어난다
우리가 인쇄에 쓰는 종이는 낱장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제지사에서는 아주 큰 한 장인 전지, 다른 말로 원지 상태로 종이를 생산하고, 인쇄소는 이 전지를 사서 인쇄기에 걸고 인쇄한 뒤 완성 크기로 잘라 냅니다. 그러니 모든 인쇄물은 이 전지 한 장 안에서 자리를 잡고 태어나는 셈입니다. 전지가 인쇄의 출발점이라고 이해하면 규격이 왜 중요한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전지는 두 계열이 있습니다. 하나는 국전지 계열이고, 다른 하나는 사륙전지, 현장에서는 46전지라고 부르는 계열입니다. 두 계열은 가로세로 비율과 크기가 달라, 어떤 완성 규격을 뽑기에 유리한지가 서로 다릅니다. 두 전지의 정확한 치수는 제지사와 재단 기준에 따라 조금씩 다르니 실제 값은 인쇄소에서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고, 여기서는 두 계열이 있고 완성 규격과 궁합이 다르다는 점을 기억하면 충분합니다.
국전지와 사륙전지, 두 계열의 갈림
두 전지 계열이 나뉘어 있는 이유는 완성 규격의 두 갈래와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종이 완성 규격에는 크게 A열과 B열이 있습니다. A4, A5처럼 A로 시작하는 규격이 A열이고, B5, B4처럼 B로 시작하는 규격이 B열입니다. A열은 상대적으로 작고, 같은 번호에서 B열이 조금 더 큽니다.
여기서 궁합이 생깁니다. 국전지 계열은 A열 완성 규격을 뽑기에 유리하고, 사륙전지 계열은 B열 완성 규격과 잘 맞습니다. 그래서 만들려는 인쇄물이 A4 기준인지 B5 기준인지에 따라 어떤 전지를 쓰는 것이 종이 손실이 적은지가 갈립니다. 완성 규격을 정할 때 이 관계를 알고 있으면, 종이를 알뜰하게 쓰는 규격을 처음부터 고를 수 있습니다. 어느 완성 규격에 어느 전지가 유리한지 정확한 판단은 인쇄소에서 확인하면 됩니다.
절수, 전지를 몇 등분하는가
전지 한 장을 완성 크기로 만들려면 몇 등분해야 하는지를 나타내는 말이 절수입니다. 전지를 반으로 자르면 2절, 그 반을 다시 자르면 4절, 또 반이면 8절, 다시 반이면 16절입니다. 숫자가 커질수록 완성물 한 장은 작아지고, 전지 한 장에서 나오는 장수는 많아집니다. 전지 한 장에서 16절이면 열여섯 장, 8절이면 여덟 장이 나옵니다.
절수는 완성물의 크기를 가늠하는 실무 언어이기도 합니다. 인쇄소에서 “이건 몇 절로 앉히면 되나요”라고 물을 때, 완성물이 전지 안에서 어떤 크기 단위로 자리 잡느냐를 묻는 것입니다. 절수를 알면 완성 크기와 전지, 종이 사용량이 한 줄로 연결됩니다. 발주 대화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손지와 단가, 왜 규격이 돈이 되는가
전지 한 장은 온전히 완성물로만 쓰이지 못합니다. 인쇄기가 종이를 물고 도는 물림 여백, 재단할 때 잘려 나가는 가장자리, 완성 규격이 전지에 딱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남는 자투리가 반드시 생깁니다. 이렇게 버려지는 종이를 손지 또는 로스라고 부릅니다. 손지가 많을수록 같은 완성물을 뽑는 데 전지가 더 많이 들고, 종이값이 올라가니 단가가 비싸집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완성 규격이 전지에 알뜰하게 들어차면 손지가 적어 싸지고, 어중간하면 자투리가 많이 남아 비싸집니다. 예를 들어 전지 한 장에 완성물이 열여섯 장 알뜰하게 앉을 규격과, 열두 장밖에 못 앉고 나머지가 잘려 나가는 규격은 종이 사용량이 크게 다릅니다. 대량 인쇄일수록 이 차이가 전체 비용에서 무시 못 할 폭으로 벌어집니다. 규격이 곧 돈이라는 말은 여기서 나옵니다.
터잡기, 전지에서 몇 장이 빠지나
전지 한 장 안에 완성물을 어떻게 배열해 최대한 많이, 낭비 없이 뽑을지 짜는 작업을 터잡기, 또는 하리꼬미라고 부릅니다. 인쇄소는 발주가 들어오면 완성 규격을 전지 위에 이리저리 앉혀 보며 한 장에서 몇 장이 나오는지, 손지가 얼마나 남는지를 계산합니다. 이 터잡기 결과가 곧 종이 사용량과 단가로 이어집니다.
디자이너가 완성 규격을 정할 때 표준 규격이나 전지에서 알뜰하게 빠지는 크기를 고르면, 터잡기에서 자연스럽게 손지가 줄어듭니다. 반대로 감각만으로 어중간한 비표준 크기를 정하면 전지에 자투리가 많이 남아 견적이 올라갑니다. 그래서 규격을 정하기 전에 인쇄소에 “이 크기면 전지에서 몇 장 빠지나요”라고 물어보는 것이 실무에서 큰 힘이 됩니다. 설계 한 번으로 비용이 갈립니다.
발주할 때 챙길 것
정리하면 발주 전 규격 설계가 비용을 좌우합니다. A열인지 B열인지, 그에 맞는 전지 계열은 무엇인지, 완성 규격이 그 전지에서 알뜰하게 빠지는지를 초기에 점검하면 낭비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널리 통용되는 표준 규격에 맞춰 설계하는 편이 손지도 적고 후공정도 매끄럽습니다.
비표준 재단이 꼭 필요하다면 손지가 늘어 단가가 오른다는 점을 감안하고 발주해야 합니다. 감성적인 특이 판형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 선택에는 종이 비용이라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알고 결정하는 것이 프로의 태도입니다. 전지의 정확한 치수와 완성 규격별 절수, 그리고 실제 터잡기에서 몇 장이 빠지는지는 종이 계열과 인쇄기에 따라 달라지니, 견적 단계에서 인쇄소에 최종 확인하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정리
종이는 전지라는 큰 원지 단위로 만들어지고, 모든 인쇄물은 그 전지 안에서 자리를 잡습니다. 국전지와 사륙전지 두 계열이 A열과 B열 완성 규격과 각각 궁합을 이루고, 전지를 몇 등분하는지가 절수입니다. 전지에서 완성물이 알뜰하게 빠질수록 손지가 줄어 단가가 싸지고, 이 배열을 짜는 작업이 터잡기입니다. 그래서 규격을 표준에 맞춰 설계하면 비용이 내려가고, 비표준 재단은 손지를 늘립니다. 전지 치수와 절수, 터잡기 장수는 인쇄소에서 최종 확인해 설계 단계부터 반영하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출처
- 국내 지업사 원지(전지) 계열(국전지·사륙전지) 구분 일반 자료
- KS(한국산업표준) A열·B열 종이 완성 규격 체계 일반 기준
- 인쇄소 입고 가이드의 절수·손지(로스)·터잡기(하리꼬미) 개념 안내
전지의 정확한 치수, 완성 규격별 절수, 터잡기에 따른 장수와 손지는 종이 계열과 인쇄 조건에 따라 달라집니다. 실제 값은 해당 인쇄소에서 최종 확인하시기 바랍니다.